“아름다움과 악마성은 같은 것이다.” - 로버트 메이플소프
국제갤러리는 오는 2월 18일부터 3월 28일까지 미국의 현대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의 개인전 《Robert Mapplethorpe: More Life》를 서울점 K2 및 부산점에서 동시 개최한다. 메이플소프는 20세기 후반 전 세계의 비평가와 예술가들에게 가장 호평 받은 사진작가 중 한 사람이자, 사회적 논쟁과 예술의 검열에 대한 담론을 생산하는 등 끊임없이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시대적 아이콘이었다.
메이플소프는 주로 탐미적 정물 사진과 섹슈얼리티를 실험한 사진을 중심으로 사회적 관습과 윤리 의식에서 벗어난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정교한 사진적 양식성을 구현했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당대 금기시되었던 흑인 남성 누드와 사도마조히즘, 게이 서브컬처 등 포르노그래피적 상상력을 통해 퀴어 미학을 도착적 스펙터클로 전유한 사진 연작들을 발표하며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80년대 이후 메이플소프는 세심하게 고려된 조명과 구성, 정밀한 계조를 통해 완벽한 사진적 양식으로 구현된 초상 사진과 누드뿐만 아니라 꽃, 과일, 청동상 같은 정물 사진 연작과 패션 광고 사진까지, 사진 매체의 범주를 초월하여 일상성 안에서 마술적 환상성과 영화적 서사를 구현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메이플소프는 자유와 욕망이 꿈틀거리던 1970-80년대 뉴욕에서 작품의 다양한 물성을 반영한 콜라주, 폴라로이드, 흑백사진, 다이-트랜스퍼(Dye-transfer) 기법의 컬러사진 등을 통해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고 스스로의 욕망을 해방하는 한편 여성, 인종, 성소수자와 같은 타자의 재현에 관한 문제들을 작업에 적극적으로 투영, 터부시되던 사회적 규범에 도전하며 당대 문화 전쟁의 아이콘이자 작가로서 컬트적 위치를 구축해낸다.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메이플소프 개인전은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까지 핫셀블라드(Hasselblad 500) 카메라로 구현한 메이플소프의 시그너쳐 흑백사진을 중심으로, 피사체의 친밀함과 경이로움, 강인함과 세속적 욕망이라는 양가적 미학을 통해 문제적 찰나를 완벽한 서사성으로 펼쳐낸 작품들을 소개한다. 특히 절묘한 시대적 감각을 음악 세계에 반영한 전설의 펑크록 가수이자 메이플소프의 뮤즈로 수많은 대중문화적 코드의 사진으로 남은 패티 스미스(Patti Smith), 단련된 여성 신체의 구현을 통해 컬트 사진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한 보디빌더 리사 라이언(Lisa Lyon), 궁극적 아름다움의 찰나와 본질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리처드 기어(Richard Gere)를 비롯해 트루먼 카포티(Truman Capote), 루이즈 네벨슨(Louise Nevelson) 등 셀리브리티의 포트레이트, 은유화된 꽃과 정물, 풍경 사진 등이 K2 1층 <Sacred and Profane>이라 명명한 공간의 벽면을 장식한다. 인물과 사물의 가장 완벽한 순간, 피사체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으며 정교한 질서와 서정적 서사성으로 펼쳐 보인 메이플소프의 흑백사진들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독특한 시각 언어로 결합된 작가의 독자적인 사진 미학을 체험하게 하고, 나아가 카메라를 통해 재현된 다양한 시각적 경험을 중심으로 메이플소프라는 문제적 텍스트를 재고찰하도록 이끈다.
K2 2층에 마련된 <The Dark Room> 전시관은 에로스와 타나토스, 죽음과 섹슈얼리티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향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 메이플소프가 뉴욕 퀴어 하위문화를 통해 포르노그래피와 외설성, 에로티시즘과 예술성의 문제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문제작들과 이를 확장 재해석한 80년대 흑인 남성 누드 등 핵심 작품들을 선보인다. 특히 오브제화 된 남성 성기, 비밀스러운 사도마조히즘 의식, 굵은 쇠사슬에 거꾸로 매달린 남자, 검은 가죽 잠바와 슬렉스 제복으로 몸을 감싼 피사체, 채찍을 항문에 꽂고 대담하게 화면을 응시하는 셀프 포트레이트, 검은색 구강성교 가죽 장치로 신체를 뒤덮은 사진 등 문제의 <X 포트폴리오> 연작들은 언캐니한 두려움과 의사 고전주의적 정교함을 보여준다. 치밀하게 계산된 채광과 구도를 완벽하게 조화시키며 극한의 미학이라는 찬사와 포르노그래피라는 악명을 동시에 부여받은 흑백사진 작품들이 설치된다.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는 젤라틴 흑백사진, 다이-트랜스퍼 컬러사진 등 다양한 사진적 물성의 양식적 실험을 보여주는 포트레이트, 정물, 청동상, 풍경 사진들을 비롯해 메이플소프가 후기에 천착했던 꽃 사진을 아우르는 다채로운 작업들을 선보인다. “나의 꽃은 어딘가 내부 깊숙이 파고들고 있고, 일반적인 꽃에서는 보이지 않는 어떤 통렬함이 있다”고 말했듯, 메이플소프는 극도로 클로즈업한 꽃을 통해 기립, 발기한 페니스의 암시, 의인화된 신체의 확장으로서 꽃이라는 피사체를 구현하고 있다.
작가 소개
로버트 메이플소프(1946-1989)는 초상, 누드, 자화상, 정물 등 흑백사진 연작들로 알려진 미국 사진작가다. 뉴욕 퀸스 플로럴 파크에서 태어난 그는 1963년 브루클린의 프랫인스티튜트에 입학하여 회화와 조각을 전공하였고, 이 시기에 다양한 예술가, 시인, 음악가들과 교류하였다. 1970년대 초반에는 패티 스미스와 브루클린과 맨하탄의 첼시 호텔에서 함께 거주하며 유의미한 초상사진과 작업들을 남겼다. 작업 초창기에 포르노 잡지의 이미지로 콜라주 작업을 시도한 작가는 비슷한 시기에 폴라로이드 SX-70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후 앤디 워홀의 <인터뷰> 잡지 촬영, 패티 스미스 등과의 앨범 커버 제작, 다양한 사교계 인사들의 초상 사진 등을 작업했다. 1977년 비영리 미술기관인 키친에서 열린 <erotic pictures>에서는 꽃과 초상 사진을 전시하고, 홀리 솔로몬 갤러리의 <flowers>, <portraits>에서는 남성 누드, 속박과 규율, 사디즘과 마조히즘(BDSM) 및 퀴어 하위문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문제적 작가로 부상했다. 메이플소프의 작품에 나타난 동성애적 이미지, 꽃을 중심으로 한 정물화, 셀리브리티 초상화, 폴라로이드 연작, 혼합 미디어 조각 등은 그의 예술적 시도와 기술적 실험을 통해 사진의 범주를 초월하여 일상성 안에서 마술적 환상성과 영화적 서사를 구현했다고 평가받는다.
메이플소프는 전 세계 유수의 미술 기관 및 갤러리에서 회고전을 선보여왔다. 대표적인 장소로는 뉴욕 휘트니 미술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필라델피아 현대미술관(ICA), 파리의 그랑 팔레,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등이 있다. 사후 그의 작품들은 신디 셔먼, 캐서린 오피, 데이비드 호크니, 소피아 코폴라, 페드로 알모도바르 등 다양한 예술가들의 큐레이션을 통해 전시화되기도 했다. 1989년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메이플소프는 2000여 점 이상의 초상, 꽃, 누드, 풍경, 광고, 정물 사진을 남겼다.
게스트 큐레이터: 이용우
미디어 역사문화연구자이며 현재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뉴욕 대학교와 코넬 대학교에서 한국 근현대 비판적 미디어 문화연구, 시각 연구, 영화 이론과 동아시아 대중문화, 전시 일본과 전후 남한의 지성사, 한국 현대미술, 후기식민지 기억 역사 연구와 번역 등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아시아 디바: 진심을 그대에게》(2017,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관, 공동큐레이팅), 《제1회 안렌 비엔날레》(2017), 홍콩 파라사이트의 《흙과 돌, 영혼과 노래(Soil and Stones, Souls and Songs)》(2016-2017) 등에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슈퍼휴머니티(Superhumanity)』(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8), 『둘 혹은 세 마리의 호랑이: 식민 서사, 미디어 그리고 근대(2 Oder 3 Tiger: Koloniale Geschichten, Medien Und Moderne)』(Matthes & Seitz Berlin, 2017), 『강서경 검은 자리 꾀꼬리(Black Mat Oriole)』(ROMA publications, 2019), 『제9회 부산 비엔날레: 비록 떨어져 있어도(Divided We Stand: 9th Busan Biennale 2018)』(Sternberg Press, 2019), 『제인진 카이젠: 이별의 공동체』(아카이브북스, 2020),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 O2 & H2O』(현실문화 2021), 『현대문학』, 『아시아 시네마 저널』 등 다수의 서적, 저널, 카탈로그에 글을 게재했다.
전시 부제목인 《More Life》는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수상하며 ‘미국 문학의 전환점’이라는 평가를 받은 토니 쿠쉬너(Tony Kushner )의 연극, 미국의 천사들(Angels in America, 1991 )의 마지막 대사에서 인용한 것이다. 동성애자 커플을 중심으로 1980년대 AIDS가 창궐한 뉴욕의 현실을 판타지로 구현한 본 연극의 말미에 끝까지 살아남은 에이즈 보균자, 월터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더이상 비밀리에 죽지 않을거에요. 세상은 앞으로 돌아가고 있죠. 우리는 결국 이 세계의 시민이 될겁니다. 때가 왔어요. 안녕히 계세요. 당신들 하나 하나는 정말이지 멋진 생명체입니다. 당신들을 축복해요: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세요. 위대한 일이 이제 곧 시작될 겁니다.” (We won't die secret deaths anymore. The world only spins forward. We will be citizens. The time has come. Bye now. You are fabulous creatures, each and every one. And I bless you: More Life. The Great Work Begins.)